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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    기념공원

      효성여자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총장인 전석재 전총장 동상사진
      효성여자대학교의 초대총장인 전석재 전 총장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.

      전석재 전 총장은 경북 영천에서 출생하였고 성 유스티노 신학교 출신이며 1942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일본(중앙대학교 법학부)에 유학을 다녀왔다.
      이후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지원 아래 대건 중학교와 효성여자중·고등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으며, 또한 효성여자대학 초대 학장은 물론 종합대학 승격 후 초대~제2대 총장을 지내는 등 교육사업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.

     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공원에 전 총장의 동상과 추모비를 세웠으며, 다양한 추모사업을 통해서 후학들이 업적을 기리고 있다.
      추모비 앞면에는 전 총장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으며, 뒷면에는 그 분의 일생에 걸친 교육사업에 대한 약력이 기록되어 있다.

      몬시뇰 전석재 총장 추모비(전문)

      1952년 몬시뇰의 춘추 서른 여섯. 황무지에서 효성여자대학교 건설의 첫 삽을 퍼올렸을 때 그 분의 의지는 곧 행동이었다.
      불도저의 굉음속에 사철 한데 바람에 찌든 모습을 제자들은 먼 빛으로 보고 다녔다. 30년이 훨씬 넘어 먼 훗날까지도. 본관 및 인문대학을 비롯한 10개 대학과 수다한 부속건물, 돌 하나 나무 안 그루가 낱낱이 그 분의 손끝을 거쳐 28만 평 캠퍼스가 하얀 상아탑으로 탄생했다.
      교단에 서면 라틴어와 불어 종교학의 명강으로 제자들은 감동시키고 대학교 최우선 과제야말로 면학임을 누누이 강조했다.
      대학의 푯대를 꽂은 후 정신적 실재와 물질적 실재를 함께 추구한 일생은 걸어도 걸어도 줄지 않는 가시밭 길이었다.
      인간을 넘은 고뇌와 노역을 살아내면서 어느덧 어깨 굽은 백발로 석양의 언덕에 이른 夕雲은 가르침과 배움의 지혜를 다시 한 번 일깨웠다.
      「진리를 포착하려는 노력과 선을 추구하는 욕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. 인식은 싸늘한 빛이 아니고 사랑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다.
      지식 자체가 사랑에 차 있고 사랑 자체가 예지에 차 있는 것이다.」
      아아, 지평선 너머 바이없이 타오르는 노을이여!
      추모비
      주교와 신부(사제)사이의 고위 성직자에 대한 경칭으로 나의 주인이라는 이태리 말에서 유래되었다. 오늘날에는 전통 있는 본당신부나 오랜 성직생활로 교회에 공이 큰 원로성직자에게 교황청에서 주는 명예의 칭호로 통용되며 교회법상 특권은 없다.